세계여행 처음페이지로 바로가기

 

 

 

 

YOUTUBE提供 감동의 글들-사랑이 있는 사람들만 보는 영상

  2011'DON BOSCO'TONJ SUDAN 심포지움이태석신부님 울지마톤즈이태석신부님 울지마톤즈극장판 톤즈에울려퍼지는어머니노래1부 나영석톤즈보고서 스테파노어떻게살까? 가난한어머니의기도 법정(외로움  ●무소유의삶 중년의삶 명상) 바보추기경 할머니와요구그트  100번째손님  우리형이아파요  미국네티즌을울린영상     전세계어머니들의노래  내가장애인인것을감사한다  INTERVIEW WITH GOD열심히 살아야할 이유 늙은아버지와아들  아내의빈자리  하나님과의인터뷰  정현철의어린시절 어머니내어머니(정현철)정현철의印度(INDIA)女性의紋樣

 

 

 

 

 Tour(2)   2005. 08 10 ~ 11

잃어 버린 우리의 땅,
대마도

  글 올리는 순서--1) 대마도 첫번째 이야기 2) 대마도 두번째 이야기 3) 일본의 두 얼굴     對馬島두 번째 이야기로

첫째날=이즈하라시라다케

대마도투어  MYHOME
대마도 上中下지도 자세히볼 수 있는 지도

對馬島 (1)つしま.thusima 첫번째 이야기

 일본·중국의영토야망

   나는 대마도에서 여행한 코스를 지도로 만들어 보았다. 부산에서 이즈하라에 도착하여. 숙박하고 북쪽인 상대마쪽으로 여행을 한다. 상대마와 하대마가 과거에 연결되어있었으나 러일 전쟁때 파서 남북으로 떨어져 있으나 만세끼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釜山國際旅客터미널出國手續前
출발하기전에 10여년 만에 만난 친구들이다. 특히 가운데 파도는 대학 졸업하고 30년이 지나서 첨 만났다. 모처럼 만난 친구들이라 이야기 하느라고 구경도 제대로 못할 판이다. 친구가 좋긴 좋다.

이즈하라市 뒷골목에서..이 도로 앞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도로가 마치 우리나라 골목길 같고 차들도 도로에 맞추어 매우 작다. 게다가 도로에는 쓰레기 하나 구경할려고 해도 보이질 않는다. 오른쪽은 개울인데 개울역시 깨끗이 잘 정비되어 있다.

부산 국제 여객터미널앞
울산서 너무 일찍 일어나 공업탑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서 총알택시를 탔다. 

 

 

 

 

첫번째

2005, 08, 11. 水

 Sea Flower

 蔚山-釜山(釜山國際旅客 Pusan International Passenger Terminal)
- 對馬島 이즈하라嚴原 -白獄神社-しらたげ-白獄山 頂上-이즈하라嚴原-氣樂な宿

嚴原 中村602-3 諸松義比古

두번째

2005, 08, 12 .木

  Bus
  Sea Flowe

 새벽 이즈하라嚴原-氣樂な宿-高兵漁場-和多都美神社 ( わたづみじんし와타즈미신사)-에보시다케 전망대えぼしたけてんぼうし鳥暢- 미네시(三根市)의 쓰시마 資料센타(三根對馬峰町の遺跡民俗資料미네마치-朴提上碑-韓國展望所-比田勝(히타카츠)-釜山港

들어가며...
제주도 보다 가까운 쓰시마(對馬島 づ しま.thusima)
 맑은 날 부산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대마도((對馬島))..
  이번 여름방학에는 항상 가깝지만 가 보기가 무척 힘이드는 대마도對馬島를 대학교 동창인 열기회까페 대장 서양석(닉이 한송이).를 주축으로 이승자,이주이,김정순,정현자,유두선,고영구,김귀순,조숙제,조정선선생님과 우리열기동창인,백순임,황영숙,장숙혜,그리고 나 이렇게 14명으로 구성되어 첫째날은 이즈하라에서 시다라케白獄山(しだらけ)와 對馬國立公園, 둘쨋날에는 켓츠이부근의 어부체험과 북쪽으로 여행하면서 賀谷(かや가야), 仁位(いい이이) 三根(みぬぜ미네세)의 豊玉町(どよだまづょ, 도요다마쵸), 仁田(にいだ니타) 突山(마야마) 사스나 さすな가 있는 峰町(みぬぢょ미네쵸)를 거쳐 比田勝港(ひだかづ 히타카츠)으로 가서 부산으로 돌아오게된다
比田勝(히타카츠)港 순시선앞

 

 

전에東京(羽田なりだ)나라(奈良)와 교오토(京都) 大板, 고베(こをべ 戶港)을 여행하며 이야기 했듯이 對馬島는 다른 일본의 여느곳 처럼 역시 조용하고 숲이 울창한 원시림, 그리고 터져가는 여름철 우리나라 해수욕장과는 달리對馬島의  해수욕장을 보면 도대체 해수욕장에는 사람이라고 한두어명 빼고는 보이질 않고 조용했다.
      물이 수정같이 맑고 깨끗하고 화장실, 샤워장 등이 모두 무료로 개방되어 있지만 사람들이 별로 없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돌아오면서 쓰시마를 돌아보니 섬과 섬사이의 좁은 만에는 우리나라에서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 들이 산더미 쌓여있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무척 아팠다.

 8월10일 수
   
작년 일본여행때 円貨(일본돈)을 거진 가져가질 않아 고생을 많이해서 9일 외환은행에서 5만원을 환전하려니 5천円밖에 안주려고 해서 할 수 없이 6만원으로 6千円과 거스럼돈 3000원을 받았다. 작년 이맘때 換率이 100 : 1200 정도에서 올해는 100 : 920원정도로 떨어져서 원貨의 가치가 다소 높아졌다. 
  그리고 지폐紙幣는 남으면 원화로 환전이 가능하나 동전은 환전이 불가하니 그냥 그대로 다 써 버리란다.
   이 얼마나 국력의 낭비냐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8월10일 새벽에 울산의 옥동에서 부산가는 시외버스를 아침 일찍 타고 노포동에 내려서 전철電鐵로 두 구간인 중앙동 12번 출구出口로 나와 부산국제여객터미널(釜山國際旅客 Pusan International Passenger Terminal)내리니 시간은 7시를 겨우넘는다.
   여객터미널 3층에 coffee나  snack류類의 음식을 팔지만 원래 밀가루 음식을 싫어하는 나로서 근처 두부백반을 3千원 주고 아침을 간단히 해결했다.

   날씨는 구름이 끼어있고 어쩌면 소나기가 올지도 모르겠다. 난 멀리만 가면 멀미를 하기에 멀미약 2명을 1400원 주고 터미널간이매점에서 사서 일행이 오기를 기다리니 조금후 대학동창인 장숙혜(까페에서 장언니로 불리움)가 검은 안경을 쓰고 왔고 재미있는 친구 백순임(도원), 키가크고 멋있는 황영숙(노란장미)와 전세계를 다 돌아다녀 안 가 본 곳이 거의 없는 여행대장 한송이 그리고 모르지만 일행이 될 여러 선생님들이 오셨다. 전체 14명중 고영구선생님과 내가 남자고 모두 여자들이다.
  40대 초반의 고영구 선생님은 사진에서 보듯이 키가 크고 인물이 훤칠하게 잘 생겼는데 영화 '
태양은 가득히'에서의 프랑스의 미남배우 아랑 드롱과 닮은 것 같이 미남이어서 줄곧 난 아랑 들롱이라고 호칭하였다



 
나와 같은 宗氏 친척인 Guide Miss 정은주鄭恩株比田勝(히타카츠)港 出入審査Immigration하기 전에 대합실(이후엔 오빠나 삼촌으로 따랐다)

 SeaFlower號를 타고 가면서 배 안 대학 친구인 마산의 도원과 노란장미와 함께...


  '아랑 들롱'이 출연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명장면
 
영화 : 태양은 가득히  고등학교 다닐 때 감명깊게 보았던 젊은이의 모습, 알랭 들롱의 씬 scene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아 아랑 들롱을 생각하니 늘 '태양은 가득히'(르네 클레망 감독, 알랭 들롱, 모리스 로네, 마리 라포레 출연)에서 주연을 맡았던 영화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젊은 나의 시절,..당시에 나의 우상偶像인 반항아反抗兒 이미지의 배우 영화 이유없는 반항. 에덴의 동쪽. 자이언트에서 열연한 제임스 딘 을 무척 좋아했었지. 제임스 딘은 단, 세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영원한 청춘의 우상이 되어버린 배우 제임스 딘 James Dean! 그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액터즈 스튜디오 출신으로 메소드 연기를 하는 연기파 배우였다.
  내가 알고 있는 제임스 딘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면.... 반항적인 내면을 가진 캐릭터로 [
에덴의 동쪽]에 등장시켜 강렬한 인상을 심었다.       The James Dean Full Story               '제임스 딘' 추억의 사진  
   
걸어서세계여행 일본 걸어서일본여행



ⓐ영화:이유없는 반항
 Rebel Without A Cause

 
영화 :자이언트 (Giant)

    원래 액터즈 스튜디오의 연기교사이기도 했던 엘리아 카잔을 만나 연기수업을 받은 그는 다음 작품으로 니콜러스 레이 감독의 [이유없는 반항]에 출연하여 미국 영화 최고의 청춘 우상으로 등극하였다.
  영화에서는 빨간 쟈켓의 고등학생 짐 스탁으로 나와 태연하게 자동차경주를 하는 그의 이미지는 깊이 각인되었다. 물론 그는 자동차를 좋아했다.

  죽음도 교통사고로 맞이할 정도였다. 이듬해 그는 다시 엘리아 카잔 감독의 [
자이언트]에서 스타 엘리자베스 테일러, 록 허드슨과 함께 출연하여 단연 돋보였었다. 여기서 그가 보여준 순응하지 않는 카우보이a cowboy 제트 린크의 모습은 개척開拓 pioneer-ing pathfinding 정신의 미국인의 표상이기도 했고, 그가 세상을 떠날 때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따라서 방황하는 아웃사이더 제트 린크의 매력적인 모습은 젊은이들이 열광하며 숭배하기에 충분했었지. 1955년 그는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 갑작스런 죽음은 내가 생각해 봐도 신화의 완성이었다. 단 세 편의 영화만을 남긴 그의 짧고 굵은 삶과 교통사고의 강한 인상은 나를 하여금 영원히 그를 잊지 못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시라다케산으로 등산하면서 보이는 돌탑과 안내판

 북쪽 상대마의 히다카츠 항에서 출항전에......

 이번 대마도 투어는 (주)대마도 투어 Tsushima Tour Co. Ltd 여행사에 신청하여 대마도와 부산사이에 Sea Flowef 이란 고속여객선을 이용하였다.
   대아여객회사는 이 Sea Flowef 란 고속여객선 한척으로 부산서  이즈하라까지 월, 수, 금, 매일 10시30분 출발하여 2시간30분 소요되고 수,토.일요일엔 북쪽편 比田勝港(ひだかづ 히타카츠)까지 1시간40분 소요된다.
   그리고 목요일 2.4주는 히타카츠에 1.3주는 이즈하라로 운항되는데  따라서 대마도는 매일 운항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즈하라= 儼(한자로 '이즈'로 나타내는 글자가 없음 '原' 즉 '하라'란 글자는 사용되지만..) 히타카츠比田勝까지 시간이 거진 절반 가까이 밖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북쪽 부산에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늘 일본내해(內海)로 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나로서 여객터미널에서 배편이 어떤지 알아보니 후쿠오카(福岡) 에는 미래고속이 2시간 55분 소요, 오사카大板에는 편도 16만萬원, 왕복은 30만 4千원을 지불해야한다고 적혀있었다.
   
우리 일행의 Guide인 Miss鄭恩珠씨..일본에 대해서, 특히 대마도가 우리영토였음에 불행히도 선조의 잘못으로 일본에게 빼앗긴데 대해 가슴아파하며 對馬島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愛國者로 熱辯을 토하고 였다. 우리일행과 여행이 끝난 후 부모님이 계시는 金海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출항시간이 되어 Immigration(출국심사出國審査)를 하고 배에 앉았다(座席B056) 배는 10시30분 정확하게 출발했다.
   배에서 보는 부산항의 풍경이 참 정답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는다. 부산항이 파도에 밀려서 점차 멀어져 간다.


   일행중 부산의 어떤 여선생님이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해서 물어보니 멀미약을 먹지 않았단다. 곁에있던 일행이 멀미약을 건네주고는 것을 보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
 뭐가 시끌벅적해서 살풋 눈을 붙였는가 싶었는데 보니 옷에 꽉 끼인 얼룩덜룩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떠들며 왔다갔다 하면서 뭘 나누어 먹고 있다. 떡이며 김밥이다. 쳐다보니 배가 슬며시 고파와 일어서서 돌아보니 그 일행중 남자한분이 울산의 광문사 사장님이 아닌가?
   일본가는 배에 함께 탔으니 반갑다고 막 손을 잡고막 흔들고 한참이나 반가워 하였다. .  ※縱斷 ①세로로 끊거나 길이로 자름. ②남북의 방향으로 건너가거나 건너옴. ¶국토 종단 계획. ꄵ횡단. ◀ 
광문사 사장님과 함께 배 안에서(올리고 난 뒤 시간이 있어서 가만히 훑어보니 航海中을 港海中을 잘못 기재되어있다 보나마나 이거 말고 틀린기 억수로 많을끼다...)울산 사이클연맹주최로 대마도 일주도로에 사이클로 종단※縱斷하려 간단다
 우리는 1박2일이지만 자전거 팀은 2박3일 일정으로 간다는데 대마도를 자전거로 일주한단다.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있고 파도가 조금 거세어 배가 이리저리 흔들거린다. 미리 멀미약을 먹어두었기 망정이지..............

    나중 우리가 이즈하라에서 히타카츠가는 도중에 차 밖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bike일행을 보게 된다.반가운 마음과 함께 떡이며, 술이며, 김밥이며 우리 일행까지 함께 나누어 먹었다.(고영구선생님 이름을 이영구로 잘못 기재되어있다 앗뿔싸...)
  그런후 배에서는
대마도 투어에서 제공하는 미리가져간 점심인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 동창인 장언니는 아까 울산 바이크 회원들에게 얻어먹은 김밥 때문인지 식사할 의욕이 없다면서 계속 잠만 자는 것 같았다.

   배가 출발한지 1시간 10분이 지나자 대마도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배는 남북방향으로 길 게 뻗은 대마도의 해안을 따라 계속 남쪽 이즈하라 항으로 내려간다.
   
 13시10분! 부산항을 출발한지 2시간 40분...이 지배에서 내려 입국심사장으로 가는데 배에서 보니 바다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어 보니 소나기가 내리고 있다
   일부회원들은 우산을 펴고 비옷으로 갈아입는데 난 우산도, 비옷도 없다.나고서 이즈하라 항에 도착하였다

    어쩌나? 그러나 잠시 후 이즈하라 항의 입국심사장을 빠져 나올 즈음 비는 멎어있었다. 공기가 맑고 상큼하다.
 우리의 여행 가이드(Guide) 정은주씨(鄭恩珠氏) 집이 김해로 27살 아가씨다. 오늘일정과 함께 본인을 소개한다. 부산여자대학을 졸업하고 일본동경학교를 졸업하여 대아고속 guide로 일하고 있단다.

 배에서 본 아름다운 부산항

첫번째

2005, 08, 11. 水

 Sea Flower

 蔚山-釜山(釜山國際旅客 Pusan International Passenger Terminal)
- 對馬島 이즈하라嚴原 -白獄神社-しらたげ-白獄山 頂上-이즈하라嚴原-氣樂な宿

嚴原 中村602-3 諸松義比古



인생에서 항상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인생에서 항상 갖고 있어야 하는 것--希望희망(Hope)   平和평화(Peace)  正直정직(Honesty)
   
인생에서 가장 高貴(고귀)한 것--사랑(Love)    親舊친구(Friend)    自信感자신감(Self Confidence)
   
인생에서 가장 確實(확실)하지 않는 것--成功성공(Succes)    꿈(Dream)    幸運행운(Fortune)
   
인생에서 좋은 사람이 되기위한 것--誠實성실(Sincerity)   努力노력(Hard work)   熱情열정(Compassion)
   
인생에서 破壞(파괴) 하는 것--自尊心자존심(Pride)  慾心욕심(Greed)  禍화(Anger)   길떠나는인생

.   독도를 일본인들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지금 對馬島(일본말 音으로 쓰시마づしま.thusima가 우리땅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 가슴아파한다. 분명 조선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조선땅이었다. 그런데 일본땅이 되기까지의 역사와  그녀가 들려주는 쓰시마 역사를 간단히 소개하기전에 여행을 다녀온 몇 년후에 나온 기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신문기사 참조
(동아일보 뉴스-2008년 7월17일 목 기사)-이 사이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료를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지난 1948년 이승만 당시 한국 대통령이 대마도(일본명 쓰시마)에 대해 한국의 영유권을 주장했을 당시 일본 정부가 위기의식을 갖고 적극적인 대응책을 검토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발견됐다고 NHK방송이 2008년 7월 3일 보도했다고 한다.
 대마도의 영유권에 대해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과 1949년
한국령이라는 주장을 폈으나 당시 일본 정부에서는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그동안 알려져 왔다고 NHK는 전했다. 그러나 1948년부터 1949년에 걸쳐 대마도에 관한 다양한 문서를 담은 책자에 따르면 '국경 쓰시마의 방위와 개발에 관한 건'이라는 극비문서에 "만약 유엔이 승인하면 일본영토에서 제외된다"는 등으로 언급돼 있는 등 외무성 담당자가 한국령 주장에 대한 대응책을 검토한 흔적이 있다고 NHK는 밝혔다.    시라다케로 등산가는 삼나무 숲이 우거진 길 숲속 이정표▶.

 
    白獄山으로 가는 중 小茂田코모다こもだ 옆길로 가는 이정표

   NHK에 따르면 도쿄(東京) 간다(神田) 고서점가에서 찾아낸 이 자료는 당시 일본정부가 대마도의 한국령 주장에 매우 위기감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당시의 일본의 한반도 정책을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자료"로 평가했다.
    對馬島는 9세기 말부터 13세기 후반까지 신라-일본, 고려-일본의 관계에서 국가간 왕래에 관한 특별한 기록은 없고, 민간 교류만 유지될 정도였다. 13세기 후반 여원麗遠 연합군의 일본 정벌征伐]せいばつ。 conquest로 인해 고려와의 민간교역 통로를 상실한 대마도민은 왜구
倭寇로 변하여 노략질을 일삼게 되었다
 
※왜구1(倭寇)ꃃ〖역사〗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중국과 우리나라 연안을 무대로 약탈을 일삼던 일본 해적.
  김종서가 저술한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는 대마도주에게 구당관(勾當官)(
고려시대 변방 지역 내지 수상교통의 요충지를 관장하는 행정책임자들에게 내린 관직명)이라는 관직을 내리고 ‘대마도구당관’(對馬島勾當官)으로 불렀다. 고려 말 공민왕 대에는 대마도주에게 만호(萬戶)라는 고려의 무관직을 제수하기도 했다

   위에 첨부된 지도를 참조하기 바란다
日本國長崎縣(일본나가사키현 소속) - 2군(郡) 6자치면(町)

   대마도의 특징

   上縣郡 : 카미아가타군
① 上對馬町 : 카미쯔시마쵸
② 上 縣 町 : 카미아카타쵸
③ 峰 町 : 미네쵸
下縣郡 : 시모아가타군
④ 豊 玉 町 : 토요타마쵸
⑤ 美津島町 : 미쯔시마쵸
⑥ 嚴 原 町 : 이즈하라마찌
  대마본섬 외에 109개의 섬이 있으며 그중, 사람이 사는 곳은 5곳. 全島의 88%가 산악이고 원시림에는 본토에서 볼수 없는 많은 대륙계 동,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산해진미 또한 풍부하고 인정이 많으며, 특히 옛부터 대륙(한반도)과의 인적, 물적교류가 계속되어 왔으며, 많은 사적 등 문화유산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는 역사의 섬이기도 하다
  대마도의 인구 : 대마전체는 4만 3천명, 대마의 중심지인 이즈하라는 1만 6천명정도이다

 조선 초기에는 일본과 왜구문제에 대하여 외교적 교섭 및 회유책과 군사적 대응을 병행하였으며, 그럼에도 왜구의 침략이 근절되지 않자 세종 원년(1418년)에는 왜구의 근거지였던 대마도 정벌이 단행되었다.
 세종실록(
世宗實錄조선 제4대 왕 세종의 재위기간 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책. 원명은《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에는 대마도 정벌 후 도주에게 보낸 교유문의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대마도는 본시 경상도 계림(신라)에 속한 우리나라 땅이다. 이것은 문서에도 기록돼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다만 땅이 몹시 좁은 데다 바다 한가운데 있어 내왕이 불편한 관계로 (우리) 백성들이 살지 않았을 뿐이다. 이에 왜놈으로서 그 나라에서 쫓겨나 갈 곳 없는 자들이 몰려와 모여 살며 소굴을 이루었다...”
 대마도 정벌이 있은 다음 해 대마도는 조선의 속주(屬州)가 될 것을 요청하였고, 조선 조정은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시키고 도주에게 인신(印信)을 하사한 적도 있다.
   어쨋던 분명 대마도는 조선의 임진왜란이 일어나기전 까지는 조선의 땅이었다. 아쉬웁게도 관리소홀로
▶▶ 일본의 땅이 되었다는 결론이다.


白獄山 산행을 위해 차에서 내려서

    하기사 당시로 보아서는 산이 전부를 차지할 정도의 아무런 쓸모가 없었던 땅이었으니 일본에서도 조선에서도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라. 오늘날 이렇게 왜인이 들어와 살 수 있도록 그냥 둔게 분명 안타깝고 가슴이 아픈 일이다.
   나가사키현[長崎縣], 쓰시마 시  708㎢ (울릉도의 약 10배, 제주도의 약40%, 섬 전체 89%가 산림지대)약 4만 2천(2004)이 살고 있다.
   대마도는 福剛후쿠오카가 바로 곁에 있으면저 저 남쪽의 나가사키현에 포함된 이유는 작은 여러섬들을 하나의 현으로 묶기 위한 방편이지만 대마도 사람들은 나가사키현長崎縣 보다는 福剛縣후쿠오카현 쪽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라고 한다. 명칭이 대마도(對馬島)라고 불린 이유는 부산에서 보면 마치 두 마리의 말이 마주보고 누워있는 형상의 섬이라 하여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對馬라 한자음을 표기하는데 쓰시마
つしま.영어로 thusima는 일본식 발음인데 그러고 보면 대마도란 우리나라에서 부르는게 일본에서도 그냥 그렇게 고유명사가 된 셈이 된다. 

    그리고 부산-대마도간 거리는 49.5km이지만, 대마도-일본 구주(九州, 규슈)의 거리는 약 3배정도인 147km이다. 배를 타면 부산에서는 1시간 10분 걸리지만, 일본 구주에서는 2시간 10분이 걸린다. 부산에서 제주도까지 313 km이니까 대마도는 제주도보다 가까이 있고, 일본 열도보다 한국에 더 가까이 있는 섬이다. 이렇게 가깝다 보니 일본열도에서는 볼 수 없는 산고양이, 말, 고려꿩 등과 같은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생태도 일본보다는 한국에 가까운 것이다.

      대마도에 살아 숨쉬는 한국 문화와 유적
 이 섬에는 일본의 흔적보다는 한국의 문화와 유적들이 더 많다. 대부분의 절에는 신라 불상이나 고려 불상이 있고, 조선시대의 범종이 달려 있다. 백제의 세력권에 속한 왜에 볼모로 있던 신라 왕자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목숨을 잃은 박제상의 순국비, 조선 숙종때 조난으로 죽은 조선역관사들을 기리는 역관사비, 대한제국 시절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일본에 항거하는 의병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대마도에 끌려가 절사한 면암 최익현의 순국비 등이 있다.
    그리고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 200여년 동안 12차례에 걸쳐 파견된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해 머물렀던 발자취가 남아서 절이나 관공서 등에 조선통신사가 묵었던 곳이라는 대리석 표지가 세워져 있다.
   
대마도의 역사적 진실
 대마도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적 기록 및 자료와 일본 측의 것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일본측의 기록을 보면, 13세기 말에 편찬된 <진대>(塵袋)에는 ‘무릇 대마도는 옛날에는 신라국과 같은 곳이었다. 사람의 모습도, 그곳에서 나는 토산물도 모두 신라와 다름이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1723년 대마도 사람 등정방(藤定房)이 쓴 대마도의 역사서인 <대주편년략>(對州編年略)에는
대마도는 고려국의 목(牧)이다. (옛날에는) 신라사람들이 살았다. . 개화천황(開化天皇) 대에 (신라 사람들이) 이 섬으로부터 (일본 본주로) 침략해 왔다. 중애천황(仲哀天皇)이 ▶▶ 도요우라궁(豊浦宮)에서 대마도를 거쳐 신라를 정벌함으로써 마침내 이 ‘섬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땅 이외의 지도는 그리지 않은 지도로서 대마, 우산. 백두산, 함경도 등이 조선땅이 었음을 지도로 표기하고 있다. 한글로 대마도, 독도로 쓴 것은 지도 발견후 요즘 사람이 지도를 보는 사람들이 조선땅이었음을 나타내기 위해 한글로 기록한 것이다.


  對馬島가 朝鮮땅이라고 記錄된 古地圖=朝鮮八道地圖(鬱陵,獨島-宇山 ,對馬를 기재하고 있다

      고대에는 대마도가 신라의 지배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오늘은 白獄山(しらたけ시라다케)을 등산을 하는데 먼저 타고갈 차는 대아여객 소속의 長岐(나가사키)227  さ24 의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
   기사분의 이름은 小鳥(ごじまちん고지마상)로 나이를 한 65~8세 정도 되어보여서 guid 정은주氏에게 물어보니 50대 후반이란다.  보기보담 참 많이 늙은 편이었다. 아마 함께 간 회원들도 이 글을 보기 전 까지는 고지마상이 나이가 매우 많은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텐데 이 글 읽고 난 뒤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자료 모음

 이 외에도 인터넷이나 기타 역사책을 근거로  대마도가對馬島가 우리땅이라는 근거 자료를 찾아 보았다

Daemado belong to the territory of the Republic of Korea(조선영토였던 대마도 )

1. 『주서(周書』와『수서(隨書』
대판만(大阪灣)에는 담로(擔魯)와 일치하는 담로도(淡魯島)가 있었다. 일본열도 내에 한국어 계통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A.D 18년에 공주(熊津)에 도읍한 비류 백제는 처음부터 백가가 되는 많은 세력이 바다를 건너왔다.(初以百家濟海)."
일본국가의 기원
규슈(九州)에는 7개의 담로(對馬, 壹岐, 伊都奴, 投馬, 邪馬臺)가 있었다(井上光貞). 서기 100년경에 이미 규슈지역의 키 작은 원주왜인(原住倭人: 고고학상의 키작은 남방계 단신인)을 정복하고 비류백제 왕실의 자제(子第)양서(梁書) 백제전(百濟傳)가 담로주(擔魯主)로 통치하고 있었다.(『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 이 때문에 담로가 많이 있었다.일본서기(日本書紀의 신대성기(神代成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음신과 양신이 성교하여 부부가 된 이후 산월(産月)에 이르러 이들 담로주(淡路州)를 모태(母胎)로 대일본을 낳았다(陰陽始, 合爲夫婦, 反至産時, 先以淡路洲爲胞… 生日本)."(金聖昊, 恩師 韓國편)이상의 내용은 백제인이 세운 담로가 일본 혼슈(本州)는 물론 규슈연안과 대마, 일기도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한단고기』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記)에 의하면, "먼 옛날 마한(馬韓) 지역에서 건너간 이주민들이 대마도·일기도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이 때문 이들 지역은 마한의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 이때 소잔명존은 아들 오십맹신을 데리고 신라국(규슈 내에 있는 拷衾新羅: 신라소국)에 내려서 소시모리라는 곳에 있었다. 그리고 "이 땅은 내가 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며 진흙으로 배를 만들어 동쪽으로 가 이즈모(出雲)의 파천상류에 있는 조상봉으로 갔다(『일본서기』신대 상8단).
  위의 신라국은
일본서기중애천황 8년 9월조에 나오는 고금신라 및 출운풍토기의 국인신화(國引神話)의 고금신라와 같은 곳으로, 규슈에는 도래인이 세운 신라소국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소잔명존이 일본의 이즈모로 이주한 것은 옛날 왕검조선 때 대마도·일기도와 규슈 등이 마한의 관경 속에 속하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서술한 내용들은 대마도를 중심으로 한 일기도와 규슈지방이 왕검조선 때부터 우리 민족이 이주하여 통치했다는 실증적 자료다. 『일본서기』에 쓰여 있는 신(神)은 그 모두가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지배인들을 칭한다는 것은 『일본서기』의 내용을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섬야노(陝野奴)를 우두천왕(스사노오)으로 모신 신사(神祠)를 우두사(寺: 소머리데라)라고 부른다.
  2. 예로부터 규슈와 대마도는 곧 삼한(三韓)에서 나누어 다스린 땅으로 본래 왜인이 사는 지역이 아니었으며, 임나(任那)가 또 나뉘어 삼가라가 되었는데, 소위 가라란 그 지방에서 중심되는 마을을 일컫는다(좌호가라는 신라, 인위가라는 고려, 계지가라는 백제이다: 한단고기.고구려편)(이병선 저 임나국과대마도, 문정찬 저
일본상고사).
3. 임나는 대마도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명칭이며, 동과 서에 마을들이 있어 치소(治所)가 있고 조공하기도 하며 배반하기도 하였는데, 그 후 대마도섬이 드디어 임나에 지배되었으므로 그때부터 모두 임나를 대마라고 일컬었다

 대마도와 부산 간 거리는 49.5km인 반면 대마도와 일본 규슈(九州)는 147km나 떨어져 있다.

(東西各有墟落 或貢或叛 後 對馬二島 遂爲任那所制故 自是任那 乃對馬全稱也: 『한단고기』고구려편)(이병선 저임나국과 대마도, 문정찬 저 일본상고사등)
4. 임나는 본래 대마도의 서북 어름에 있었는데 북쪽은 바다로 막히고 국미성에 치소가 있었다.(任那者 本在對馬島西北界 北阻海有治曰 國尾城:『한단고기』고구려편)(일본서기, 이병선 저 임나대마도, 문정찬 저 일본상고사).
5. 영락 10년에 세 가라(대마도)가 모두 고구려에 구속되었고 이로부터 바다와 육지의 모든 왜가 임나에 통합되어 열 나라로 나뉘어 다스리니 이름하여 연정(聯政)이라 하였다.(400∼479년)(永樂十年 三加羅盡歸我 自是 海陸諸海悉統於任那 分治十國 號爲聯政)(『한단고기』고구려편, 〈광개토대왕비문〉, 이병선 저임나국과 대마도』)
6. 이들 연정(대마도·일기도·말로국·규슈·세도연안·야마토왜)은 고구려에 직할되어 열제(광개토대왕)의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행할 수 없었다(400∼479년).
 그 후엔 백제가 관할하였다(
然 直轄於高句麗 非烈帝所命 不得自專也)(『한단고기』고구려편 열제의 비문내용)

독일지도이다 동해를 한국해(Merde Coree MEER VON KOREA)라고 독일어와 불어로 표기되어 있다.

 7. 가락국기편: 가락국 6대 좌지왕 2년(408년) 왕비 용녀(傭女)가 붕당을 일으키어 국력이 쇠잔할 때 고구려 연정(대마왜)이 지배하였다(신라 실성왕7년, 동진 安義熙 3년, 일본 皇反正 3년).(〈광개토대왕비문〉, 인터넷 대마도 사료)
8. 『삼국사기 권3, 신라본기
실성왕7년조 왜가 대마도에 병영을 설치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가락국과 신라는 같이 근심하였다. 대마도를 정벌하려 하는데 미사품(未斯品)의 간언으로 중단했다.『삼국사기』의 본조(本條)에도 임나국은 가락의 영토(任那國之所係 赤各羅古城所係)라 했다.
이 때 대마왜는 임나연정의 고구려 지배하에 있었다.
9. 대마도는 가락국의 영토로서(삼국사기.가락국기. 대동세보), 비단무역의 거점으로 용성국(나가사키)→오키나와→리만 해류를 타고 싱가포르→중국 복강성→갠지스 강→아유타국→아라비아 대상이 비단을 나른 곳이었다.(14년의 실제 탐방으로 엮어낸 이용기 저서가락국의 영광 ).
10. '아메노 히보코' 설화는 당시의 한국세력이 대마도를 거쳐 일본열도에서 땅을 개척하였으며, 그 후손들이 일본왕정에서 번영하게 된 경위 등을 진실하게 쓰고 있다.(일본의 『고사기(古事記)』).
  11. 『위지동이전(魏璡夷傳)』왜인전의 3세기 대마도 모습의 기록은 대마도가 대마국(對馬國)으로 표기되어 있고,『한단고기』고구려편에는 혼슈·규슈·대마도에는 본래의 왜인이 없다고 기술되어 있으므로 그곳 주민들은 곧 우리 나라 도래인(度來人)을 뜻한다.
12. 우리 나라 삼국사기에는 대마도라 기록되어 있으며,일본서기 에는 대마국·대마도·대마주 등으로 쓰여 있다. 한자의 음을 빌린 대마란 이름이 중국의 『삼국지』이래로 널리 쓰여졌다. 대마란 마한(馬韓)과 마주 대한다 하여 부른 이름이다.
13. 일본의『고사기』에는 '진도(津島)로 나와 있고『일본서기』의 신대(神代)에는 '한향지도(韓鄕之島)'로 기술되어 있다.
이것은 대마도 이름의 뜻과 관련된 것으로서 '쓰시마(津島)'는 한반도로 가는 배가 머무는 항구와 같은 섬이고, '가라시마(韓鄕之島)'는 바로 한국인의 섬으로서 한국사람이 고대로부터 사는 섬 또는 한반도로부터 사람과 문화가 건너올 때 거쳐온 섬, 교역이 이루어졌던 섬으로도 표현된다.
14. 한국영토의 남쪽 구야한국(拘邪韓國:加那)에서 바다를 건너면 대마국에 이른다. 그곳의 대관(大官)을 '히고(卑拘)'라 하고 부관을 '히노모리(卑奴母難)'라고 불렀다는 대목의 '대막국도(對馬國島)'가 있는데 이것이 최초의 쓰시마(對馬) 기록이다
  또 『위지(魏志)』의 편집자는 '津의 島'라는 의미로 이해했을 것이다. 즉 쓰(津)는 배가 닿는 곳이며, 따라서 배가 닿는 섬이란 뜻으로 쓰시마(津島)로 표기해야 옳았고, 고사기(古事記)에도 쓰시마로 되어 있다.    
1815년에 서양에서 제작된 지도이다. 지도제목은 한국과 일본(Japan & Corea)인데  서양지도에서는 섬이 작아 울릉도나 독도를 찾아보기 힘이 든다 그러나 이 지도에서는 독도, 울릉도, 대마도를 분명하게 표기되어 있으며 한국의 거북선도 나타내어있다.

또 하나 유력한 설은 한국어의 해설이다. 일본어의 시마(島)는 한국어의 '섬'에서 유래된 말로서 한국말의 두 섬이 두시마, 쓰시마로 되었다는 설이 있다.위의 내용들은 놓고 볼 때 3세기 이전부터 대마도가 바로 구야한국(가야)에 속했다는 것이 삼국사기 실성왕 7년편과가락국기, 6대 좌지왕 2년의 기록 및 대동세보에 수록되어 있다

※『삼국사기』권3, 신라본기 제3, 실성왕 7년조 "春二月 王聞 倭人於對馬島置營貯以兵革資粮以謀襲我 我欲先其未撥揀精兵聲破 兵儲舒邯未斯品曰, 臣聞兵器戰危事…."편년 가락국기 실성왕 7년편 "神王二年 戊申新羅實聖王 七年 西紀四0八年 倭始置營于 馬島 神王戊申 倭始營於對馬島 洛羅二邦爲憂…."
『대동연보』좌지왕편 "新羅實聖王七年 東晉安帝熙四年 日本皇反正三年 倭始營于 對馬島…
."
이러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 볼 때
5세기 이전에 대마도는 오랫동안 바로 가야의 영토이었음이 밝혀졌다. 즉 일본의 영토가 아님을 일본인 스스로 증명하는 대목이다.
15. 일본사학자 나가도메 히사이의 저서
대마도 역사관광에 나타난 대마도의 소도(卒土)는 마한의 소도(蘇塗)와 같은 것이며, 다카무스 비노미코도와 데라시스 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 등의 각종 신화가 조선분국의 존재를 증명한다. 다시 말해 대마도신의 고향은 바로 한국이다(나가도메 히사이 저, 대마도 역사관광).
  
16. 영락 10년(410)에 세가라 (대마도 三韓分國: 左護·仁位·鷄知)는 모두 고구려에 귀속되고 이로부터 바다와 육지의 모든 왜가 임나(任那)에 통합되어 열 나라로 나누어 다스리니 이름하여 임나연정(任那聯政)이라 하였다.(태백일사.고구려편)(이병선 저 임나대마도, 문정찬 저 일본상고사』,『일본서기』5 王代,〈광개토대왕비문〉).
17. 구야한국(금관가라)에서 1천여 리 떨어지 바닷길을 한 차례 건너서
대마국에 이르니 사방이 400여 리쯤 외었고 그곳에 조선 도래인이 주거하고 있었다(위지 왜인전, 태백일사 대진국 본기).
18. 대마도에서 1천여 리 떨어진 바닷길을 한 차례 건너서 일기국(壹岐國)에 이르니 사방이 300리쯤 되었다. 본래 이곳은 사이기국(斯爾岐國)인데 자다(子多)의 여러 섬 사람들이 모두 조공하였다(대마도의 治所를 중심으로 한 조선분국임)(조선분국 주장설은 김형석·조희승 저『일본에서의 조선분국』,『한단고기』대진국편).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한국침략을 위하여 왜를 두둔하고 끌어들이는 입장이다. 중국 사서(史書: 宋書, 梁書, 南史) 등의 5세기에 실린 일본기사 가운데서 왜·신라·임나·가라·진한(秦韓)·모한(慕韓) 등의 사지절도독(使持節都督: 정권을 위임받은 총독)의 칭호를 받았으므로, 역대 일본학자들은 이때 일본정권이 바다 건너 한국 남부를 경영하였다는 증거로 삼아 이 부분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들은 일본왕실의 일방적인 가필이며, 그 당시에는 일본열도 내에서는 통일왕정은 없었으므로(통일왕정은 7세기 후반임), 도래한 한국소국 중에 대마도를 근거한 임나연정왕의 증거임이 이미 드러났다(〈광개토대왕비문〉: 왕 10년(400~479)후에 대마도에 임나연정이 수립되었고, 5왕(찬·진·제·흥·무)은 곧 대마도의 임정왕을 칭함)
                   (김석형·조희성 저일본에서의 조선분국, 이병선 저『임나국과 대마도』)..

 20. 아라(安羅)는 대마도의 임나(任那)로 편입되고 고구려와 더불어 이전부터 화친을 맺었다.
       말로국(末盧國)의 남쪽은 대우국(大隅國)이라 하는데 그곳에 시라군(始羅郡)이 있었으며, 본래 우리 나라 남옥저 사람들이 도래하여 살았던 장소이다(태백일사 대진국편, 김석형·조희성 저『일본에서의 조선분국』,〈광개토대왕비문〉)
21. 신라가 통일한 후 8세기(779년)에 국교가 단절되자 일본은 군사적 및 무역의 요충지인 대마도를 침거하여 조선약탈의 기지로 삼았으나, 신라는 통일전과 같이 계속하여 왜구를 소탕하였으며 대마도를 관리해 왔다.
       특히 9세기 초 이후 장보고의 해상활동과 신라의 적극적인 정치적 갱입이 있었고, 일부 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811년, 812년, 813년, 814년경에 대마도에 관리를 파견하고 회사품을 하달한 내용이 있다(나종우 저,『중세의 대일관계』중 고려 전기내용 참조, 원광대학교출판부, 1996).
  
22. 대마도의 등정방(藤定房)이 1723녀에 편찬한『대주편년략(對州編年略)』3권으로 구성된 산가요략기(山家要略記에는 "대마도는 고려국의 행정치소인 목(牧)이었다. 옛날에 신라사람들이 이곳에 살았고, 중애천황(신공황후 섭정)이 대마도 악포(鰐浦)에서 신라를 정벌함으로써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지적한 신라는 대마도에 있는 좌호가라(佐護加羅) 중심의 신라이며, 중애천황 8년(199년)9월조에는 천황이 신라정토의 신탁을 믿지 않고 억지로 웅습(熊襲)을 토(討)하다가 승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기록을 남겼다(이병선 저 임나대마도 , 일본서기, 한단고기고구려편).
23. 고려시대에는 만호(萬戶)라는 관리를 파견하여 대마도를 관리하였고, 진봉선 무역(進奉船貿易: 왜와 대마도가 진상해오면 회사품으로 답하여 많은 생필품을 보냄)을 하였다. 그리고 우왕3년(1375)에는 박위를 보내어 대마도의 섬주민을 보호하고 왜구를 격퇴했다. 이것은 대마도가 고대로부터 우리 영토임을 재확인한 과정이다(나종우 저중세의 대일관계, 원광대학교 출판부, 1996).
24. 가마쿠라 막부시대 중기(13세기 말0에 만들어진 진대(塵垈) 11권의 사서(辭書)로서 저자 불명의 권2에 의하면 "무릇 대마도는 옛날에는 신라국과 같은 곳이다. 사람의 모습도, 그곳에 나는 토산물도, 있는 것 모두가 바로 신라의 것이다"로 되어 있다.
이것은 옛날부터 대마도에 신라사람들이 대를 이어 살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대마도가 신라와 같은 곳임을(左護加羅: 신라)증명하며, 인종적·문화적으로 동질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외에도 전·후술하는 모든 내용들이 대마도는 한반도와 지척간에 있는 부속도서로서 우리의 정치 및 문화권에 상존해있었다는 것은 일본학자들이 증명하는 바이다. 대마도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문화유적과 생활습속들에 대해서『대마도·일기도 종합학술조사 보고서』(서울신문사, 1985) 및 일본인이 쓴『신대마도지』에 잘 정리되어 있다.
25. 세종 원년(1418년)에 있은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즉 기해동정(己革征)이후 대마도는 계속하여 경상도 동래부의 소속 도서로 편입되어 조선정부의 통치에 임했다.
26. 속주화(屬州化)를 요청한 도주사신(島主使臣)의 요청 내용인즉
"밖에서 귀국을 호위하며…우리 섬으로 하여금 영토 안에 주군(州郡)의 예에 따라 주의 명칭을 정하여 주고 인신(印信)을 주신다면 마땅히 신하의 도리를 지키어 시키는 대로 따르겠습니다(以爲外護貴國…若將我島 依貴國境內州郡之例 定爲州名賜以印信 則當效臣節 惟命是從)".(세종실록 2년 윤1월10일)
  27. 확고한 국가관을 가졌던 세종과 학자 김중곤(金仲坤)은노비문기(奴婢文記)에 두지(豆之: 대마도)
인이 있는 데 대하여 "대마도는 곧 조선의 땅이며 그곳에 왜인(조선 도래인)이 살고 있다고 해서 무엇이 관계되랴"고 말한 데서 세종 때의 대마도 인식관을 알 수 있다(『세종실록』23년 11월22일)
세종 때 정승인 황희(黃喜)도 대마도는 예로부터 우리 땅인데 고려 말기에 국가기강이 허물어져 도적의 침입을 막지 못해 왜구가 옹고하게 되었다는 속주의식을 피력했다. 이와 같은 대마도 속주위식은 군신과 학자, 일반국민 모두의 머리와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28. 행장(行壯), 노인(路引), 문인(文引), 도서(圖書), 수직왜인(受職倭人), 통신부(通信符), 상아부(象牙符) 등의 각종 통행증을 발급한 것은 대마도민은 우리의 속민이었다는 것과, 무로마치 막부하의 일본이 스스로 요청하여 통교허가를 받은 것은 일본이 우리 조정에 대하여 조공을 바쳤다는 실증적 내용이다. 이들 통행증의 왕래와 검역은 거제도 지세포(知世浦) 만호가 담당하였다.(『세종실록』권4,8,82 등).
 
29. 일본 대마도의 수직왜인에게 내린 교지(敎旨: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관리의 임명장)는 군신간을 돈독케 하고, 임금에 대하여 충성을 다한다는 신하의 책무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교지의 내용을 볼 때 일본과 대마도 주민은 조선의 정치체제 안에 편입되었음을 알 수 있고 또한 그들을 보살핀 조선정부의 성의가 내포되어 있다(中村榮孝,「受職倭の告身」,『한일관계사 연구』상권 p.585).

30. 한편 세조 때에는 대마도주 종성직(宗成職)의 수직을 추천하던 과정에서 대마도주에게 내린 교서에서도 "경의 조부가 대대로 우리의 남쪽 변경을 지켜서 국토를 보호하게 되었는데, 지금 경이 선조의 뜻을 이어서 더욱 공경하고 게으르지 아니하며 거듭 사람을 보내 작명(爵命)을 받기로 청하니, 내가 그 정성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숭정대부 판중추원사 대마주 병마도절제사를 제수한다"고 했다(『세종실록』7년 8월28일).
31. 그 후 성종과 연산조의 조정에서 대마도주에게 주는 서계(書契)에서도
"대마주는 우리 나라의 속신(屬臣)인데 어찌하여 조선과 대마도를 양국이라 칭하느냐. 너의 도주가 우리 조정에 신하라 칭하였으니 대마도는 조선의 일개 주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란 기사가 많이 본인다(『성종실록』25년 2월7일, 『연산군일기』 8년 정월 19일).
32. 이황(李滉)은 조선과 대마도의 관계를 중국 역대왕조의 대오랑캐 정책을 원용하면서 부자관계로 보았다(『갑신포역절왜소(甲辰包勿絶倭疏)』, 『퇴계전서(退溪全書)』권6) 또 그는 세사미두(歲賜米豆)의 의미에 대하여 "대마도가 충성을 다하여 바다를 든든하게 지키는 수고로운 공적을 가상히 여겨 해마다 하사한다"고 하였다.(에조답대마도주(禮曹答對馬島主) 권8).
33. 세종 26년(1444) 일기도 초무관 강선권의 보고서에는 "
대마도에 대하여 일본국 왕의 명령이 미치지 못하는 섬"이라고 하여 일본의 본토와는 분명히 다른 지역(바로 조선의 섬)으로 파악하였다.(세종실록 26년 4월30일).
34. 대마도는 경상도에 예속되었으니 문의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본도 관찰사에게 보고를 하여 그를 통해 제반사를 보고하도록 하고 직접 본조에 올리지 말도록 할 것이요, 겸하여 요청한 인장과 하사하는 물품을 돌아가는 사신에게 부쳐 보낸다(對馬島隸於 慶尙道 凡有啓稟之事 必須呈報本島觀察使 傳報施行母得直呈本曹兼請請印篆竝賜物 就付回价)(세종실록 2년 윤 1월23일,  신대마도지 의 응구(應寇) 부분 참조).
35. 김성일이 서장관 허성(許筬)에게 보낸 답서의 내용에서
"대마도가 우리나라 조정의 은혜를 입고 우리의 동쪽 울타리를 이루고 있으니 의리로 말하면 군신지간이요, 땅으로 말하면 우리의 속국이다"라고 말했다(답허서장서(答許書壯書), 해사록(海 錄 권3).
수없이 많은 사료(100여 자료모음)에 대마는 조선의 땅임을 증명하는 글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모두 이 곳에 다 올릴 수 없고 여러방면의 글을 싣도록 한다..

-김화홍(대마도도 한국땅, 知와 사랑)

 연구사학자인 김화홍(전 고성중앙고 교장)씨 자신의 저서 <대마도도 한국땅>에서 찾아본 각종 대마도가 한국령이라는 이유.
" 1488년 당시 명나라 사신이었던 동월()이 영종의 명을 받아 조선 땅을 둘러본 뒤 작성한 견문록 ‘조선부()’에 나와 있는 ‘조선팔도총도()’라는 지도에 대마도가 조선의 영토로 표기돼 있다.
  문헌사료를 통해 본 대마도 부분 중 ‘대마도가 우리 땅임을 밝히는 고증사료 모음’에서 일본서기(日本書紀), 풍토기(風土記), 한서(漢書), 당서(唐書) 등 일본과 중국의 문헌에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부분적 증거들을 발췌, 자신의 주장에 신뢰성을 부여했다.  
   특히 일본 서기에 ‘대마도는 단군 조선 때부터 철종 1856년까지 한반도에 조공을 바치는 등 신하 노릇을 해왔다’고 기술돼 있어 대마도는 한국 땅임이 분명하다
 
  
대마도는 한반도내 고구려와 백제, 신라, 가야 등의 역학 관계에 따라 번갈아 이들의 분국, 속국, 연정 형태로 존재해 왔다. 안타깝게도 조선의 국운이 기울면서 1877년 메이지(明治) 정부 시절 대마도가 나가사키(長崎) 일부로 일방적으로 편입된다"즉,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대마도는 단군 조선 때부터 조선 철종(1856년) 때까지 조선에 조공을 바치는 등 신하였다."  그러면 님의 질문에 대한 답이 무얼까?.
  대마도는
삼국시대에 우리의 영토 였다.
   그것을 일본 최고 권위의 역사서가 인정했다.대마도는 독립국이었지, 일본의 영토는 아니었으니까..
  가) "너희 섬(:대마도)은 조선 지방이니, 마땅히 조선 일에 힘을 써야 한다."― 에도 막부 장군의 측근이 대마도 고위관리에게 한 말.

대마도를 조선 영토로 표시한 1592년 일본의‘조선국지리도’중‘팔도총도’. 현존하는 지도는 1872년 재모사한 것이다. 지리적 개념이 부족해 독도(우산도)가 울릉도의 서쪽에 그려졌지만 명백한 조선 영토로 돼 있다.

   서기 1617년 통신사 이경직이 자신들(통신사 일행)을 수행하던 대마도의 고위관리에게 이 말을 듣고 적어 놓았다.
나) 대마도는 … 대대로 우리 조정의 은혜를 받아 조선의 동쪽 울타리를 이루고 있으니, 의리로 말하면 임금과 신하 사이요, 땅으로 말하자면 조선에 부속된 작은 섬이다.― 서기 1590년, 임진왜란 직전에 통신사 부사로서 일본을 다녀온 김성일이 조선에 돌아온 뒤 낸 보고서
다) 우리 대마도에게 조선 영토 안의 주 군(州 郡)의 예에 따라 주(州)의 명칭을 정하여 주고 인신(印信 : 도장)을 주신다면 마땅히 신하의 도리를 지키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서기 1419년 대마도 정벌 뒤에 대마도주가 보낸 서신에서.(전략) … 이곳은 일본 국왕의 명령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중간에서 망령되게 자존하면서 포악하오나, 이들 모두 도서(圖書)를 받고 우리 조정에 귀순하기를 바라고 있사오니, 바라옵건데 이 섬의 두목들에게 예전처럼 오고 가게 하고, 이따금 양식이나 주고 도서를 주어 뜻밖의 우환에 대비하게 하소서.― 서기 1444년 대마도에 보내졌던 초무관 강권선이 세종에게 보고한 글.

  11세기 후반(1000년경)부터 13세기 후반(1200년경)까지 200여 해 동안 대마도의 고려에 대한 진봉관계가 연구로 밝혀지고 있습니다.(대마도는 고려 때에도 우리의 영토였음)-『산가요약기(山家要略記)』(:12세기 말 일본 천태종의 승려가 쓴 책)에 말하기를 "대마도는 고려국의 목(牧 : 목장)이다.
  옛날에는 신라 사람들이 살았는데, 개화천황(開化天皇)대에 이 섬(대마도)으로부터 (일본본주로) 습래(襲來)해 왔다. 중애천황이 풍포궁에서 대마도를 거쳐 신라를 정벌함으로써 마침내 이 섬을 얻었다."고 하였다.― 1723년 대마도인 등정방(藤定房)이 쓴 대마도의 역사서인『대주편년략(對州編年略)』에서..무릇 대마도는 옛날에는 신라국과 같은 곳이었다. 사람의 모습도 그곳에서 나는 토산물도 있는 것은 모두 신라와 다름이 없다.― 13세기 말의 일본 책인『진대(塵袋)』 제 2권에서『고려사』에 의하면 고려는 선종 2년(1085) 이래 대마도주를 '대마도구당관(對馬島勾當官)'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이 점이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흥미롭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제주도의 성주(星主)를 '탐라구당사'(耽羅勾當使)로, 일기도(대마도와 구슈 섬 사이에 있는 이키 섬) 도주(島主)를 일기도구당관이라고 명명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당관은 고려시대 변방 지역 내지 수상(水上)교통의 요충지를 관장하는 행정 책임자들에게 붙인 관직명이다. 이를 보면 탐라, 대마도, 일기도의 지배자에게 고려가 구당사 혹은 구당관이란 명칭을 붙인 의미를 알 수 있다. 즉 앞의 세 섬을 고려의 속령(: 영토로 속한 땅)으로 인식하였거나 아니면 고려 정부가 대마도와 제주도를 고려 고유의 지배 질서 속에서 같은 차원으로 취급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우봉의 논문『한국인의 대마
조선전국도(제작시기 미상 - 일본 가고시마현 현립도서관 소장)도인식 에서

 대마도는 섬으로서 본래 우리 나라의 땅이다. 다만 궁벽하게 막혀 있고, 또 좁고 누추하므로 왜놈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년부터 뛰어놀기 시작하였다.― 태상왕이었던 태종이 세종 때 대마도 정벌을 하기 전에 군사들에게 내린 교유문에서
대마(:대마도)는 섬으로서 경상도의 계림에 예속되었던 바 본시 우리 나라 땅이라는 것이 문적(文籍 : 서적, 기록)에 실려 있어 확실하게 상고할 수 있다. 다만 그 땅이 매우 작고 또 바다 가운데 있어서 왕래함이 막혀 백성들이 살지 않았을 뿐이다. 이에 왜놈으로서 그 나라에서 쫓겨나 갈 곳 없는 자들이 몰려와 모여 살며 소굴을 이루었던 것이다.
― 대마도를 정벌한 뒤 대마도주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동여지전도(1860)](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대마도는 본래 조선의 목마지(牧馬地 : 말 기르는 땅)이므로 대내전(大內殿)이 조선과 더불어 협공하여 대마도를 귀국(:조선)에 돌리고자 하다가 불행히도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의 영주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 대마도 정벌 이후 일기도로 파견된 조선 관리인 강권선에게 일기도 영주 대내전(大內殿)의 관반(館伴)인 노라가도로(老羅加都老)가 한 말...풍신수길이 조선 침략에 대비하여 무장에게 명령해서 만든 지도인『팔도 전도』에는, 독도 뿐 아니라 대마도도 조선의 땅으로 나와 있으며, '공격 대상'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일본도 대마도를 일본 땅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大きな岩(오오끼나이와)숲곁 샘터 글이 잘못기재(岩의 發音이いわ이와임)

 
   
白獄山(しらたけ시라다케)코스 안내지도

  산에 나무가 울창하고 그야말로 발 디딜틈 없이 빽빽하다...산악지대라 평지는 별로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군데군데 일본어와 한글로 쓴 안내판이 보인다.
  일행에서 다리가 좋질 않은 우리 대학동창인 노란(황영숙)이만 빼고 모두 걸어서 산으로 향하기 전에 물맛이 좋다는 大きな岩(오오끼나이와)란 숲이 울창한 도로곁의 물을 마셔보았는데 그야 말로 물맛이 환상적이다.

 좋은 물은 색깔도 냄새도 맛도 없어야 하는데 무색무취에 맛은 어떤 맛이라고 할까? 물맛에 반했다고 하면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래저래 かみざか카미자카에 도착하였다. 지금부터 산행이다. 白獄山 (519m)등산후 하산하여 그 반대쪽인 스모 すも 에 가면 버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산행이 시작되는데 윈시림과 조림이 공존하며 울창한 나무(90%가 산악지대)로 그야말로 숲의 바다이다. 산 아래쪽에는 삼나무(すぎ木)과 측백나무(ひのぎ)로 심어져 있는데 모두 경제림이다. 가이드 정은주말로는   쓰시마의 나무만 팔아도 일본전체 인구를 4년동안 먹여살릴 수 있는 량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
고 한다.
  대
아여객에서 고용된 일본 쓰시마市의 現地人이라고 한다.  차는 白獄山(したらけ시다라케)산의 중턱인 上見板(카미자카かみじゃが )에 내려주고 걸어서 5.5km인 정상까지 갔다가 그 반대편 주차장이 있는美韓까지 1.5km를 걸어간다.  

  산이 너무 경사져서 밭이나 논으로 사욜할 수 있는 땅이 전체의 고작  5%내외로 작년 혼슈(本州)를 여행할 적 텃밭을 전혀 볼 수 없었는데 이 곳 쓰시마는 둘쨋날 上對馬町을 여행하면서 그 비탈진 곳에 고구마가 심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본에는 우리나라에서 그 흔하디 흔한 텃밭이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그 만큼 땅에서 나는 것을 전혀 얻을 수 가 없을정도로 땅이 경사지고 혹시 조금 비탈진 곳이라면 바로 주택이 들어서 있다..인구도 얼마되지 않는데..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정말 복 받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도중에 이정표를 보여준다.
 대마도에는 젊은 사람이 거의 없고 나이 많은 사람들만 있다보니 대마도사람이 등산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개의 경우 한국사람들이 시라다케정상까지 등산을 한다고 하는데 가는 곳에 白獄(したらけ시라다케), 小茂田(ごもた코모다), 上見板(카미자카かみじゃが )등을 한글로 표기한 이정표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곳 시다라케 산 미타케 산은 등산로가 나 있지만 이 곳 보다 더 높은 산들이 있지만 등산을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다


 したらけ의 白獄神社부근 里程表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8월의 하늘이지만 숲에 들어가서 시라다케산 정상에 올라갈 때까지 햇빛을 한두어번 받았는가?
   모두 숲속이라 오후4시의 여름철에 햇빛이 약간씩 들어오지만 정말 전등을 켜야 할 정도로 캄캄해서 손전등이 있어야 할 정도였다.
   땅에는 음지
(陰地 : 볕이 잘 들지 아니하는 그늘진 곳)식물 따위는 아예 구경도 할 수 없고 풀한포기가 없다. 그 어두운 곳에서 어떤 식물이라도 살 수 없겠지만...그냥 운동장과 꼭 같이 맨땅이다. 하늘에서나 높은 산에서 보면 울창한 초록빛인데도 말이다...    
  이 곳에서 白獄神社시다라케 신사의 갈림길까지의 길은 그저 오르막이 있다가 내리막이 있다가 산책하는 코스처럼 단순하다. 이 정도야 뭐.......하는 마음이 들지 몰라도 나중 이건 큰 오산이다. 시라다케신사부터 너무 가파른 곳이라 밧줄을 잡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게 될지도 모르고.........
   드디어 시라다케신사白獄神社에 도착했다. 사진에서 보듯이 빨간깃발을 붙여놓고 신사  뒤쪽에 다시 나오겠지만 시다라케신사는 和多都美神社(わたづみじんじゃ와타즈미 신사 Watazumi Shirino=토리이どりい의 고도리ことり=5마리의 새)의 바닷신海神의 해궁海宮을 뽑아 이곳에 심어둔 신사가 시라다케신사(白獄神社)이다. 이 곳 시라다케산 도리 에서 사진을 열기회원들과 함께 찍었다.

 白獄神社-1

  시라다케에 自生하는 植物을 소개한 案內板

 

  시라다케신사(白獄神社)에서부터 정상 시라다케 정상까지는 정말 가파르고 오르기 힘들다.
  나야 평소에 공차고 뛰어다니기 때문에 올라가기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일행중 평소 운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무척 힘이 드는 모양이다.
   어서 산 정상에 올라가서 산에서 보이는 점점이 섬들을 보고 싶었지만 뒤에 쳐지는 사람들 때문에 내 혼자 올라가기가 뭐해서 천천히 맨 뒤에서 혹시나 낙오자가 생기면 부축이라도 할려고 천천히 올라갔다.
   산 정상 가까이에서 함께온 나를 제외한 유일한 남자인 고영구선생님과 함게 먼저 정상에 도달했다.
  시다라케정상에서 보이는 바다와 섬들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얼마전까지 휴대폰이 부산까지 되었다고 하는데 그 소식을  TV에서 "대마도에서도 우리 oo회사 휴대폰이 아주 자알 터집니다"라는 광고를 하고 난뒤부터 일본측에서 그 소식을 접하고는 전파를 차단시켜 버려서 휴대폰이 되질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래도 문자메세지는 겨우겨우 가는지 회원중 한 사람이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내려오는 길은 쉽게 올 수 있었다. 숲이 울창한 곳이라 해가 떨어지면 곤란할 것 같애서 서둘러 하산하였다.

  시라다케 정상에서 바라본 대마도---여기서 한국의 휴대폰이 잘 들려서 일본에서 막았단다..아쉽게도...그저 말 안하고 가만 있었으면 지금도 여전히 휴대폰이 잘 터졌을텐데 돌아다니면서 잘 터진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니 일본에서 막아 버렸단다.
   하대마에서 상대마로 연결하는 만세끼 다니.......
  러일 전쟁때 까지 상하가 연결되었는데 전쟁의 전략상 가운데를 파서 남북섬으로 나누게 하였단다.

白獄山 頂上

  아오시오노 사또

에보시타케에서 바라 본 아소만


  白獄山등산후 스모로하산중 울창한 편백

  白獄神社의 갈림길에서 기다리다기에 먼저와서 앉아있는데 숲이 우거진 위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린다
   '울산남자선생님. 어서 올라오세요"   
  왜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위에서 누군가 다쳐서 못 내려온다고 어서 올라가 보랜다.
  다리도 아프고 힘도 다 빠져 가기도 싫고 그렇게 앉아 있는데 그렇지만 사람이 다쳤다면 여행에 지장이 있을 것을 뻔히 알기에 오르막 산을 허겁지겁 올라갔더니, 왠걸..........
  한송이가 아픈 흉내를 거짓말로 했단다...
  여기까지 다시 올라와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다치지 않았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산대장이 다치면 우리 일정이 우찌될끼고? 생각만 해도 아찔...한송이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반대편 주차장이 있는美韓까지 1.5km를 걸어 내려왔더니 다리가 아파서 등정을 못한 열기회원(晋州敎育大學校10期大學同窓釜山,蔚山모임名稱)노란장미가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日本 內海를 여행하고 싶어하는나로서, 오면서 가이드 정은주씨에게 들은 이야기로  福剛(후쿠오카)에서 대마도對馬島까지 하루 4차례씩 배가 있고 배삯이 3만円이며 큐유슈우九州에도 여러차례 운항한다고한다.
  그리고 일본문화중 특이한 것은 화장실에 들어갈 때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노크를 하는데 일본에서는 노크를 '똑똑'하고 두드리는 것 자체가 안에 있는 사람에게 어서 나오라는 명령의 뜻이므로 노크를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안에있는 사람이 기척을 해 준다고 한다.

 白獄山 頂上 바위 아래에서 저 멀리 上對馬町

   내려오는 길은 과거 일본대마도 경비대였고 지금 이즈하라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우측으로 하면서 일본 국도38호선을 따라 이즈하라로 돌아와 万松閣(반쇼우각꾸  嚴原町田劑808☎52-0021)에서 밥 작은 한공기, 우동, 노란무우 아주 찌그마한 것 몇조각과 새우튀김 2개, 사시미 4조각 양배추 무침으로 저녁을 먹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의 모든 것을이 쪼막쪼막하고 자그마한고 이쁘고 앙징스럽다.
   도로도 폭이 너무 좁아 이 길로 차가 제대로 다니기나 하겠나 싶어도 그 좁은 길을 이리저리 피해 잘도 다니고 또 다니는 차들이 너무 귀여울 정도로 작은 차들만 다닌다.
 우리나라 1500cc급의 엘란트라, 엑셀, 베르나 정도의 차는 이곳에서 중 대형차에 아마 속할 것이다.
    대부분 마티즈나 티코 정도의 아주 작은 차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 좁은 도로로 중간에 분리선 같은 표시라인도 없다
   밖으로 허세를 내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도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일 것 같다.
  그 처럼 저녁식사의 반찬도 종류는 하도 많으나 딱 먹을 만큼만 내어놔 맛이 우리 입맛에 맞지도 않고 닝닝(느끼)하게 이상하게 냄새가 날 것같은 느낌인데도, 남기는 사람이 한사람없이 모두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 택시의 모양도 네모형이 참 많았고 식당앞의 개천은 맑다 못해 너무 맑아서 거짓말 조금 보내서 마셔도 될 정도로 깨끗하였고 쓰레기 봉지하나 구경하나 할 수가 없었다.
  저녁식사가 끝난후 300円을 주고 대아호텔 목욕탕에서 8시에서 9시까지 목욕 한다길래  목욕을 하다가 함께 하던 고용구선생님이 먼저나가고 내 생각으로 여자들은 목욕을 오래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피곤하고 해서 좀 오랫동안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8시 50분쯤 되어서 욕탕에서 나와 대아호텔 프론트에서 賣日(마이니치)新聞과 朝日(아사히)신문을 뒤적이는데도 사람들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눈이라도 잠시 붙일까 싶어 버스에 갔더니 황당하게도 모든회원들이 목욕을 마치고 버스에서 나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지만 일행은 모두 웃음만 칠 뿐 암 소리 하지 않았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럴수가..?
 
  ◀
이즈하라 시내 근접 촬영사진

오른쪽 하단에 보이는 곳이 내가 내린 이즈하라 국제 터미널이다(
그림을 누르세요)
  
 이즈하라항공사진(대마도관광링크)

    숙소는  이즈하라 市의 602~3번지 무로마찌氣樂な宿 요시히고 諸松 義比古씨 집에서 민박을 하였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대마도 여행을 할 의사가 있는 사람을 위해 아래 그 주소와 전화번호를 올려놓는다.
  한가지 아쉬운건 대마도 사람들은 영어를 전혀 모른다.
  이번 여행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나는 평소에 영어회화책을 보고 있는데 이건 무용지물이다.
  영어실력에 관해서는 상상 이상의 것인데 심지어 '예스'나 '노오' 혹은 '굿모닝' 같은 말뜻 조차 모른다.
   물론 일본글인
ひらかな히라까나 カタガナ가타까나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글자수가 극히 제한적인 맹점盲點도 맹점이거니와 대부분 젊은이들은 다 빠져 나가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고 영어의 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이며 게다가 서구인은 이틀동안 단 한사람도 배에서나 어디서든지 본 기억이 없을정도로 대마도에는 서구인의 외지外地인 모양이다. 관광객이라곤 한국인이 대부분이라서 한글로 된 안내판이 자주 보인다.
 안주인은 사진에 보듯이 마치 누님같이 자상한 사람으로 이름이 諸松惠子(むろまづ  げひご무로마쯔 게이꼬)로 6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나를 만나면 그저 '하이 하이' 하면서 '타오르?' 하며 목욕장도 안내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세심한 것 이나기타 여러곳을 안내해 주는 것에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
※ 商號 : 氣樂な宿=內用숙박료 : 一泊朝食府3500円 主所 :長板縣나가사끼현 對馬市(쓰시마시)嚴原町이즈하라마찌中村나까무라602-3 諸松義比古 TEL FAX : 0920-52-2970

万松閣(반쇼우각꾸 嚴原町田劑

 일본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단 한 장의 사진

  빌리브란트 독일수상이 폴란드를 방문했을때 그가 무릎을 꿇으며 한말.
 
 "인간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 (1970년 12월 7일, 빌리브란트 서독 수상이 폴란드를 방문해서 무명용사의 묘에 참배하던 중, 갑자기 무릎을 꿇어 과거 나치때 독일이 이웃나라에게 저지른 과오에 용서를 구하였다)

 
일본은 역사 왜곡을 멈추지 않는다.
  
똑같은 역사의 죄인인 일본인과 독일인의 태도를 보면서..고개숙이는 독일 수상..그러나 일본의 뻔뻔한 태도에 어느덧 길들여져, 우리 한국인들의 윤리의식이 잠들다가 확 깨어난다.
  나는 일본인 모두에게 이 한장의 사진을 꼭 보여주고 싶다.

 

 

 

 

 

 

 

 

 

  1. 서울서 제주까지 항공기 연료는 몇 드럼이나 쓸까?
  2. 조종사가 운전을 너무 못해요 !
  3. 항공권 가격은 왜 차이가 날까?(싸게 구입하는 방법)
  4. 이제 액체류를 가지고는 항공기에 탑승할 수 없군요
  5. 비행기 앞자리가 빈 경우에도 주지 않는 건 왜죠?
  6. 항공기가 번개를 맞아도 안전한 이유는?
  7. 짐(수하물)을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
  8. 항공기 좌석 중 좋은 자리는 어디?
  9. 여권/Passport에 대해 알아보자 (여권의 비밀)
  10. 항공기 짐은 어떻게 마지막 목적지까지 연결될까?
  11. 항공사와 여행사는 악어와 악어새?
  12. 항공권은 여행구간 순서대로 사용해야
  13. 항공기는 하루에 몇 시간 떠 있을까?
  14. (종이) 항공권 발권 시 별도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15. 항공기 최고의 인기기종은?
  16. 비행기는 새(Bird, 鳥)가 무섭다
  17. 죽어도 떠야 한다 !! (항공기 이륙의 비밀)
  18. 연료, 버려야 산다 (항공기와 비상착륙)
  19. 마일리지 프로그램 (1) - 어디서 처음 만들었을까?
  20. 항공기는 다이어트와 전쟁 중
  21. 날씨가 나쁠 때 항공기는 무슨 기준으로 띄우나?
  22. 국내 항공사의 정시운항 능력은 어느정도 수준일까?
  23. 항공사가 왜 여권 검사하나?
  24. 항공여행 무료 수하물 부치는 방법
  25. 항공기 기장(機長)이 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26. 즐거운 여행을 위한 항공기 기내 예절
  27. 안전한 항공여행, 상식적인 기내 수칙
  28. 공동운항편 이용 시, 체크 포인트
  29. 국내선 항공기는 뜨자마자 착륙을 준비한다?
  30. 항공기 기내가 조금 춥게 느껴지는 이유?
  31. 조종사 좌석마다 임자가 있다 !
  32. 조종사는 햇볕이 괴롭다 (선글래스의 유래)
  33. 항공기 폭파 장난전화, 이제 그만
  34. 공항은 24시간 운영되지 않는다?
  35. 이륙 시 항공기 꼬리부분, 활주로에 닿는 사고 연출
  36. 거대한 비행물체, 하이브리드 에어쉽
  37. 과거 위반사실로 자칫 입국 거부될 수도 (미국 출입국)
  38. 무릎조차 펴기 힘든 좌석 공간은 괴로워
  39. 기내 인터넷 이용 시 에티켓은?
  40. 항공기도 때로는 무임승차를 좋아해 ^^ (항공기와 제트기류)
  41. 기내에서 추울 때 따뜻한 항공여행 팁
  42. 엔진 하나만 가지고 안전할까? (ETOPS)
  43. 편안한 기내 여행을 위한 팁 몇가지
  44. 항공기는 스치기만 해도 사고 !! (Near Miss)
  45. 주의해야 할 항공권 상식 ① - 타 항공사 사용불가
  46. 기내에서 승객이 사망한다면?
  47. 조종사도 술 마시고 싶다?
  48. 혹시 의사 선생님 계시나요?
  49. 어린 아이들 데리고 항공여행 하는 법
  50. 비슷한 수하물 조심해야 분실 방지
  51. 분실 수하물의 종착지는? 폐기 처분?
  52. 맹인인도견은 애완동물이 아니다
  53. 항공기 좋은 좌석 먼저 확보하는 방법 10가지
  54. 휴대전화를 항공기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
  55. 내가 수하물 잃어버릴 확률은?
  56. 항공기에서 승무원들이 쉬는 장소는?
  57. 승객 탔다가 내리면 나머지 승객도 모두 내려야
  58. 저가 항공사는 어떤 특징? 선착순 탑승제?
  59. 민간 항공시장을 이끈 항공기 톱 10
  60. 전자담배, 무해? 그럼 비행기 안에서 피워도 되나?
  61. 여행 전문가가 조언하는 불만제기 10가지 팁
  62. 김포공항에 회항한 항공기, 승객은 기내에서 대기해야 하나?
  1.  
  2. 공항에서 18년을 산 사나이
  3. 항공기 배경의 항공 영화 10선
  4. 가장 안전한 항공기 좌석은 통로
  5. 왜 항공사보다 여행사 티켓이 더 쌀까?
  6. 재미있는 무인 비행물체 10선
  7. 항공기 조종사도 초보 시절 이착륙 하고 싶어도 못해..
  8. 미국 공항, 매주 1만대 노트북 분실 (공항에서 소지품 분실 예방법)
  9. 세계 최장 비행시간 노선 7 선
  10. 항공여행 비용 절약 팁 몇가지
  11. 항공기, 4번 엔진부터 시동을 거는 이유
  12. 장거리 항공편에서 살아남기
  13. 어린이 승객 잃어버린 정신나간 항공사 (UM 서비스)
  14. 부자만 세계일주? 나도 저렴한 세계일주 항공여행 간다
  15. 여행 가방, 간단하게 싸기 (수하물 요금 예방?)
  16. 항공 수하물 안전하게 운송하는 몇가지 팁
  17. 기내식이 맛있는 항공사 10선
  18. 수하물 분실했을 때, 꼭 알아두어야 할 몇가지
  19. B747 항공기 엔진은 몇개일까? 숨어있는 엔진 이야기
  20. 항공기 출발과 도착,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21. 항공시차 증후군(Jet Lag)에 대해 당신이 모르는 10가지
  22. 메이데이(Mayday)는 노동절이 아니라니깐!
  23. 높은 고지대 공항에선 비행기 날기 힘들다
  24. 좌석 없다더니, 공항에 나와보니 널널하네?
  25. 항공기 탑승, 옷 점잖게 입으면 좋은 이유 한가지
  26. 미국 무비자(No-Visa) 여행과 전자여행허가(ESTA) 절차는?
  27. 비행기 잘못 탔어요 ㅠ.ㅜ
  28. 락스? LAX? 공항 코드 이야기
  29. 비행기, 눈(Snow)을 꼭 치워야 하나?
  30. 가방(수하물) 하나 운송하는 데 원가는 얼마?
  31. 초대형 항공기 A380, 너무 조용해서 불만
  32. 슬롯(Slot)은 항공사 재산이다?
  33. 자격 부족해 착륙 못한 항공기 조종사?
  34. 기내 승객 폭력, 항공사 책임 있을까?
  35. 졸다가 목적지 공항 지나쳐 날아간 조종사
  36. 기내 휴대가방 크기는 좌석 사이즈 때문에 제한된다?
  37. 비행기 안에서 태어나면 국적은 어디?
  38. 수하물(짐)이 파손되는 이유는 집어 던지기 때문
  39. 연료 부족하게 실은 어처구니없는 항공기(연료는 얼만큼 실어?)
  40. 비행하는 항공기 문, 힘으로 열 수 있을까?
  41. 항공기, 후진할 수 있나요?
  42. 항공 마일리지 1마일은 얼마의 가치가 있나?
  43. 애완동물과 함께하는 항공여행, 알아두어야 할 점은?
  44. 혹시 당신은 항공 블랙리스트(No-Fly)가 아닌가?
  45. 장시간 비행기 타면 손발이 붓는 이유
  46. 항공여행 트러블 줄이는 몇가지 방법
  47. 수명 끝난 항공기, 폐기 처리는 어디서?
  48. 화산 터지면 비행기는 혼비백산 꽁무니 빼야~
  49. 조금이라도 더 싼 항공권 구하기 (동영상)
  50. 객실 사무장(Purser)과 지갑(Purse)과의 관계는?
  51. 항공기 사고에서 살아남는 방법(동영상)
  52. 항공기 타이어 가격과 착륙 후 열을 식혀야 하는 이유
  53. 3만 피트 상공에서 잠 잘 자는 방법
  54. 비자 있는데도 입국 거절되는 이유는?
  55. 부당한 입국 심사, 항의는 어떻게 해야?
  56. 세계 최초의 항공기 탑승객은 누구?
  57. 항공기 연료 아무데나 버려? (연료 덤핑 장면 현장 포착)
  58. 800명 넘는 승객, 탈출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59. 항공 여행객에게 드리는 충고 10가지
     
    승무원 제대로 괴롭히는 방법 7가지, 매너 지킵시다 ^^;;
  60. 항공기 한번 착륙에 소형 자동차 한대 값 빠져나가
  61. 황혼의 낙원 바로가기
     
    저가 항공사 (라이언에어), 방심하면 비싼 요금 치루기 십상

♣ 幻想의 섬 對馬島

아래 신문은 서울신문 1989년 겨울호로, 신문 전체를 다 싣지 못했다. 대마도에 대한 자료로 읽어 주었으면...

       신문참조......대마도는 조선땅 - 출처 : 한배달 1989년 겨울호 ↑ ↓
 

                          세계(世界) 테마 기행(紀行) 映像                       

 

 JUNG-HYUNCHUL'S AROUND THE WORLD   JUNG-HYUNCHUL'S AROUND THE WORLD   JUNG-HYUNCHUL'S AROUND THE WORLD

     서울臨津閣      濟州島       巨濟島     주남貯水地     智異山    鬱陵島 獨島   일본영토야욕     걷고또걷고

  MY AROUND THE WORLD 정현철세계여행처음으로돌아가기 여행의첫머리 旅行情報-準備物CHECKIIST 日本2004/06 ①東京富士山 ②京都 大板  ③Universal-Studio     ④日本語  對馬島2005/08 ①嚴原이즈하라  ②比田勝히다카츠  臺灣TAIWAN2005/12 ①臺北타이페이 ②基隆키륭 ③華蓮 ④臺北 西-EUROPE2006/08①英國London  ②프랑스Paris-1  ③프랑스Paris-2  ④스위스Jungflau  ⑤이탈리아-Rome ⑥이탈리아-Vatican ⑦獨逸Frankfurt  INDIA-槪要2007/01①뭄바이Mumbai ②엘로라Elrora ③바라나시Baranisi ④람라거Ramragar ⑤카주라호Kajuraho ⑥오르차잔시Orchha.Jansi⑦자이푸르델리JaipurDelhi⑧인도사진-1⑨인도사진-2 中國東北3省2007/07 ①심양연길 ②백두산-1 ⑦백두산-2 ③용정토문  ④장춘하얼빈  ⑤731부대 ⑥하얼빈심양  VIETMAN2008/01①하노이 ②하롤베이 CAMBODIA2008/01①앙코르왓 ②타프론 ③톤레삽 왓트마이 金剛山2008/05①금강산-1 ②금강산-2 ③금강산-3  SILK-ROAD2008/08①우루무치 ②유원,명사산 ③돈황막고굴 ④하미투루판 ⑤쿠무타크사막,카레즈  東-EUROPE2009/08 ①브루노Bruno ②아우슈비츠Auschwitz ③크라코프Krakow ④부다페스트Budapest ⑤비엔나Wien ⑥짤즈부르크스Salzburg ⑦체스키크롬로프Ceskykromluv ⑧프라하Prague  南西-EUROPE 北-AFRICA2010/01①리스본RISBON ②세빌랴SEVILLA ③지브랄탈GIBRALTAR ④라바트 페즈 RABART- FEZ ⑤카사블랑카CASABLANCA ⑥그라나다GRANADA ⑦톨레도TOLLEDO ⑧마드리드MADRID ⑨사라고사ZARAGOZA ⑩바르셀로나BARCELONA  中國 安徽省黃山2010/08①黃山空航,淸代老街청대노가 ②翡翠溪谷雲谷寺峽谷비취계곡구간 ③醉溫川 夢生筆花몽생필화-仁川  이집트,그리스,터키2011/01두바이,룩소르DubaiLuxor 카이로Cairo 아테네Ahtenes 에베소Ebesow 파묵칼레PAMUKKALE 카파도키아Capatocia  앙카라Ankara 이스탄불Istanbul 後記The latter period record 발칸반도2011/08 슬로베니아Bled 크로아티아 Plitvice 크로아티아Diocletian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Sarajevo 세르비아몬테네그로Beograd 불가리아Sophia 터키Edirne 터키Bosfores Strait cruise 後記The latter period record   타일랜드 2012/01방콕BANGKOK   파타야-1PATTAYA-1 파타야-2PATTAYA-2 방콕BANGKOK 남인도 2014/01인천 홍콩HongKong  남인도.첸나이Chennai 마말라푸람MamallaPuram ④칸치푸람Kanchipuram ⑤마두라이Madurai ⑥데까디Tekkady ⑦알레피Alleppey ⑧코친Cochin ⑨벵갈로르Bangalore ⑩마이소르Mysore ⑪홍콩,인천,後記HongKong And the latter 필리핀2014/02 부산 마닐라MANILA  팔라완 푸에르토 프린세사 PUEFTO PRINCESA  地下江UNDER GROUND RIVER ④海邊AT THE BEACH  ⑤팜파가宣敎地 PAMPAGA Mission Field  ⑥ Rainbow Church 後記 And The latted 中國 西安省(태항산:太行山)2014/10 ① 釜山-西安,鄭州 Xi'an, Zhengzhou  中國太行山 Taihang  登封 少林寺Dengfeng Xiǎolínsì  ④落陽 龍門石窟 香山寺Long-wen Lo-yang

 참고로 저는 '졍현철세계여행' 홈페이지를 만들기위해 아래와 같은 여러 Program을 사용하여 만들었습니다 .  

HTML.TAG. LINK-Hyper Text Makeup Langage의 略字, TAG LINK는 파일용량 과다사용으로 서버 지정할당용량을 초과경향이 있으므로 내 다른 홈페이지의

 사진이나 자료를 불러들여(이것을 LINK라 함) 이 곳으로 끌여다 함께 다른 서버와 함께 동시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ACDSee32-사진이나 그림을 자르고 붙이거나 줄이고 jpg. jpeg, wmf. bmp. ptx, Tif 등으로 저장하여 사용했습니다
JAVA Applet-별모양 마우스 따라다니거나, 날짜자동설정, 시계모양, 글자의 여러모양 변환등을 만드는 방법
NAMO WEB EDIT-  DramWeaver와 같이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한 편집 및 저작 도구 프로그램
Windows Movie Maker-Micro Soft社의 Windowsㅏ에서 제공하는 사진, 그림으로 동영상을 제작하는 프로그램
ALSee, ALGIF-ALSee는 ACDSee32와 비슷한 프로그램, ALGIF는 움직이는 그림이나 사진(Free Dowon Load可能)
Swish.Flash-나의 홈페이지 Index의 글자가 날라오거나 그림이나 사진이 여러모습으로 움직이며 변환하는 그림

TAG. LINK를 사용하는 내 홈페이지들

정현철아름다운세상 정현철그림나라 서양미술사 정현철세계여행 정현철미술갤러리 정현미술세계까페 와송까페 정현철블로거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아름다운세상

기타 훈민정음. ETC-아래아한글, Word같이 SamSung에서 제공하는 문서편집프로그램으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여행사이트를 제작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내 어린 時節이야기    어머니 나의 어머니      나의 奉仕活動   어느 大學生 手記   처음처럼

 

Use to  My Homepage Count

 

NETIAN

EutDreamwi

GALLERY

KYUNGDAE

 

 

 日本 本州 tour     home

 

 

 

 

일본어

 

 

 

 

 

        對馬島 두 번째 이야기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