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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2) 2005. 08 10 ~ 11 |
잃어
버린 우리의 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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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리는 순서--1) 대마도 첫번째 이야기 2) 대마도 두번째 이야기 3) 일본의 두 얼굴 對馬島두 번째 이야기로 |
♣첫째날=이즈하라시라다케 |
對馬島 (1)つしま.thusima 첫번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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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마도에서 여행한 코스를 지도로 만들어 보았다. 부산에서 이즈하라에 도착하여. 숙박하고 북쪽인 상대마쪽으로 여행을 한다. 상대마와 하대마가 과거에 연결되어있었으나 러일 전쟁때 파서 남북으로 떨어져 있으나 만세끼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
釜山國際旅客터미널出國手續前 |
이즈하라市 뒷골목에서..이 도로 앞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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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국제 여객터미널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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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
2005, 08, 11. 水 |
Sea Flower |
蔚山-釜山(釜山國際旅客
Pusan International Passenger Terminal) |
嚴原 中村602-3 諸松義比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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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
2005, 08, 12 .木 |
Bus |
새벽 이즈하라嚴原-氣樂な宿-高兵漁場-和多都美神社 ( わたづみじんし와타즈미신사)-에보시다케 전망대えぼしたけてんぼうし鳥暢- 미네시(三根市)의 쓰시마 資料센타(三根對馬峰町の遺跡民俗資料미네마치-朴提上碑-韓國展望所-比田勝(히타카츠)-釜山港 |
| 들어가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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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東京(羽田なりだ)나라(奈良)와 교오토(京都) 大板,
고베(こをべ
戶港)을 여행하며 이야기 했듯이
對馬島는 다른 일본의 여느곳 처럼 역시 조용하고 숲이 울창한 원시림, 그리고
터져가는 여름철 우리나라 해수욕장과는 달리對馬島의 해수욕장을
보면 도대체 해수욕장에는 사람이라고 한두어명 빼고는 보이질 않고
조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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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0일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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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랑
들롱'이 출연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명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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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액터즈 스튜디오의 연기교사이기도 했던 엘리아 카잔을 만나
연기수업을 받은 그는 다음 작품으로 니콜러스 레이 감독의 [이유없는 반항]에 출연하여 미국 영화 최고의 청춘 우상으로 등극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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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다케산으로 등산하면서 보이는 돌탑과 안내판 |
북쪽 상대마의 히다카츠 항에서 출항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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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마도 투어는 (주)대마도
투어 Tsushima Tour Co. Ltd 여행사에 신청하여 대마도와 부산사이에 Sea
Flowef 이란 고속여객선을 이용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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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시간이 되어 Immigration(출국심사出國審査)를
하고 배에 앉았다(座席B056) 배는 10시30분 정확하게 출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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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중 부산의 어떤 여선생님이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해서 물어보니 멀미약을 먹지 않았단다. 곁에있던 일행이
멀미약을 건네주고는 것을 보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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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 우리가 이즈하라에서 히타카츠가는 도중에 차
밖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bike일행을 보게 된다.반가운 마음과 함께 떡이며, 술이며, 김밥이며 우리 일행까지 함께 나누어
먹었다.(고영구선생님 이름을
이영구로 잘못 기재되어있다 앗뿔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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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나?
그러나 잠시 후 이즈하라 항의 입국심사장을 빠져 나올 즈음 비는 멎어있었다.
공기가 맑고 상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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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라하 도착, 입국심사장 |
배에서 본 아름다운 부산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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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
2005, 08, 11. 水 |
Sea Flower |
蔚山-釜山(釜山國際旅客
Pusan International Passenger Terminal) |
嚴原 中村602-3 諸松義比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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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일본인들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지금 對馬島(일본말 音으로 쓰시마づしま.thusima가 우리땅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
가슴아파한다. 분명 조선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조선땅이었다. 그런데
일본땅이 되기까지의 역사와 그녀가 들려주는 쓰시마 역사를 간단히
소개하기전에 여행을 다녀온 몇 년후에 나온 기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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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에 따르면 도쿄(東京) 간다(神田)
고서점가에서 찾아낸 이 자료는 당시 일본정부가 대마도의 한국령 주장에 매우 위기감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당시의 일본의
한반도 정책을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자료"로 평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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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
첨부된 지도를 참조하기 바란다 日本國長崎縣(일본나가사키현 소속) - 2군(郡) 6자치면(町) |
대마도의 특징 | |
| 上縣郡 : 카미아가타군 ① 上對馬町 : 카미쯔시마쵸 ② 上 縣 町 : 카미아카타쵸 ③ 峰 町 : 미네쵸 |
下縣郡 : 시모아가타군 ④ 豊 玉 町 : 토요타마쵸 ⑤ 美津島町 : 미쯔시마쵸 ⑥ 嚴 原 町 : 이즈하라마찌 | 대마본섬 외에 109개의 섬이 있으며 그중, 사람이 사는 곳은 5곳. 全島의 88%가 산악이고 원시림에는 본토에서 볼수 없는 많은 대륙계 동,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산해진미 또한 풍부하고 인정이 많으며, 특히 옛부터 대륙(한반도)과의 인적, 물적교류가 계속되어 왔으며, 많은 사적 등 문화유산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는 역사의 섬이기도 하다 |
| 대마도의 인구 : 대마전체는 4만 3천명, 대마의 중심지인 이즈하라는 1만 6천명정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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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에는 일본과 왜구문제에 대하여 외교적 교섭 및 회유책과 군사적 대응을 병행하였으며, 그럼에도 왜구의 침략이 근절되지
않자 세종 원년(1418년)에는 왜구의 근거지였던 대마도 정벌이 단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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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사 당시로
보아서는 산이 전부를 차지할 정도의 아무런 쓸모가 없었던 땅이었으니
일본에서도 조선에서도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라. 오늘날 이렇게 왜인이
들어와 살 수 있도록 그냥 둔게 분명 안타깝고 가슴이 아픈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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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산-대마도간 거리는 49.5km이지만, 대마도-일본 구주(九州, 규슈)의 거리는 약 3배정도인 147km이다. 배를 타면 부산에서는 1시간 10분 걸리지만, 일본 구주에서는 2시간 10분이 걸린다. 부산에서 제주도까지 313 km이니까 대마도는 제주도보다 가까이 있고, 일본 열도보다 한국에 더 가까이 있는 섬이다. 이렇게 가깝다 보니 일본열도에서는 볼 수 없는 산고양이, 말, 고려꿩 등과 같은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생태도 일본보다는 한국에 가까운 것이다. |
| 대마도에 살아 숨쉬는 한국 문화와
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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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는 대마도가
신라의 지배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오늘은 白獄山(しらたけ시라다케)을
등산을 하는데 먼저 타고갈 차는 대아여객 소속의 長岐(나가사키)227
さ24 의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 |
|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자료 모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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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인터넷이나 기타 역사책을 근거로 대마도가對馬島가
우리땅이라는 근거 자료를 찾아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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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mado belong to the territory of the Republic of Korea(↓조선영토였던 대마도 ) |
1. 『주서(周書』와『수서(隨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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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서술한 내용들은 대마도를 중심으로 한 일기도와 규슈지방이 왕검조선 때부터 우리 민족이 이주하여 통치했다는
실증적 자료다. 『일본서기』에 쓰여 있는 신(神)은 그 모두가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지배인들을 칭한다는 것은 『일본서기』의 내용을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섬야노(陝野奴)를 우두천왕(스사노오)으로 모신 신사(神祠)를 우두사(寺: 소머리데라)라고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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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와 부산 간 거리는 49.5km인 반면 대마도와 일본 규슈(九州)는 147km나 떨어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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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西各有墟落 或貢或叛 後 對馬二島 遂爲任那所制故 自是任那 乃對馬全稱也:
『한단고기』고구려편)(이병선 저임나국과 대마도, 문정찬 저 일본상고사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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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지도이다 동해를 한국해(Merde Coree MEER VON KOREA)라고 독일어와 불어로 표기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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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가락국기편: 가락국 6대 좌지왕 2년(408년) 왕비 용녀(傭女)가 붕당을 일으키어 국력이 쇠잔할 때
고구려 연정(대마왜)이 지배하였다(신라 실성왕7년, 동진 安義熙 3년, 일본 皇反正 3년).(〈광개토대왕비문〉, 인터넷 대마도
사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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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유력한 설은 한국어의 해설이다. 일본어의 시마(島)는 한국어의 '섬'에서
유래된 말로서 한국말의 두 섬이 두시마, 쓰시마로 되었다는 설이 있다.위의 내용들은 놓고 볼 때 3세기 이전부터 대마도가 바로
구야한국(가야)에 속했다는 것이 삼국사기 실성왕 7년편과가락국기,
6대 좌지왕 2년의 기록 및 대동세보에 수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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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권3, 신라본기 제3, 실성왕 7년조 "春二月 王聞 倭人於對馬島置營貯以兵革資粮以謀襲我 我欲先其未撥揀精兵聲破
兵儲舒邯未斯品曰, 臣聞兵器戰危事…."편년 가락국기
실성왕 7년편 "神王二年 戊申新羅實聖王 七年 西紀四0八年 倭始置營于 馬島 神王戊申
倭始營於對馬島 洛羅二邦爲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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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한국침략을 위하여 왜를 두둔하고 끌어들이는
입장이다. 중국 사서(史書: 宋書, 梁書, 南史) 등의
5세기에 실린 일본기사 가운데서 왜·신라·임나·가라·진한(秦韓)·모한(慕韓) 등의 사지절도독(使持節都督: 정권을 위임받은 총독)의 칭호를
받았으므로, 역대 일본학자들은 이때 일본정권이 바다 건너 한국 남부를 경영하였다는 증거로 삼아 이 부분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들은 일본왕실의 일방적인 가필이며, 그 당시에는 일본열도 내에서는 통일왕정은 없었으므로(통일왕정은 7세기 후반임), 도래한 한국소국 중에
대마도를 근거한 임나연정왕의 증거임이 이미 드러났다(〈광개토대왕비문〉: 왕 10년(400~479)후에 대마도에 임나연정이 수립되었고,
5왕(찬·진·제·흥·무)은 곧 대마도의 임정왕을 칭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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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아라(安羅)는 대마도의 임나(任那)로 편입되고 고구려와 더불어 이전부터 화친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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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지적한 신라는 대마도에
있는 좌호가라(佐護加羅) 중심의 신라이며, 중애천황 8년(199년)9월조에는 천황이 신라정토의 신탁을 믿지 않고 억지로 웅습(熊襲)을
토(討)하다가 승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기록을 남겼다(이병선
저 임나대마도 , 일본서기, 한단고기고구려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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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행장(行壯), 노인(路引), 문인(文引), 도서(圖書),
수직왜인(受職倭人), 통신부(通信符), 상아부(象牙符) 등의 각종 통행증을 발급한 것은 대마도민은 우리의 속민이었다는 것과, 무로마치 막부하의
일본이 스스로 요청하여 통교허가를 받은 것은 일본이 우리 조정에 대하여 조공을 바쳤다는 실증적 내용이다. 이들 통행증의 왕래와 검역은 거제도
지세포(知世浦) 만호가 담당하였다.(『세종실록』권4,8,82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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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사학자인 김화홍(전 고성중앙고 교장)씨
자신의 저서 <대마도도 한국땅>에서 찾아본 각종 대마도가 한국령이라는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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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를 조선 영토로 표시한 1592년 일본의‘조선국지리도’중‘팔도총도’. 현존하는 지도는 1872년 재모사한 것이다. 지리적 개념이 부족해 독도(우산도)가 울릉도의 서쪽에 그려졌지만 명백한 조선 영토로 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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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617년 통신사 이경직이 자신들(통신사 일행)을 수행하던 대마도의 고위관리에게 이 말을 듣고 적어 놓았다. |
| 11세기
후반(1000년경)부터 13세기 후반(1200년경)까지 200여 해 동안 대마도의 고려에 대한 진봉관계가 연구로 밝혀지고
있습니다.(대마도는 고려 때에도 우리의
영토였음)-『산가요약기(山家要略記)』(:12세기
말 일본 천태종의 승려가 쓴 책)에 말하기를 "대마도는 고려국의 목(牧 : 목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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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섬으로서 본래 우리 나라의 땅이다. 다만 궁벽하게 막혀 있고, 또 좁고 누추하므로 왜놈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년부터 뛰어놀기 시작하였다.― 태상왕이었던 태종이 세종 때 대마도 정벌을 하기
전에 군사들에게 내린 교유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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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본래 조선의 목마지(牧馬地 : 말 기르는 땅)이므로 대내전(大內殿)이 조선과 더불어 협공하여
대마도를 귀국(:조선)에 돌리고자 하다가 불행히도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의 영주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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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나무가 울창하고 그야말로 발 디딜틈
없이 빽빽하다...산악지대라 평지는 별로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군데군데
일본어와 한글로 쓴 안내판이 보인다. |
| 좋은 물은
색깔도 냄새도 맛도 없어야 하는데 무색무취에 맛은 어떤 맛이라고 할까?
물맛에 반했다고 하면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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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너무 경사져서 밭이나 논으로 사욜할 수 있는
땅이 전체의 고작 5%내외로 작년 혼슈(本州)를 여행할 적 텃밭을
전혀 볼 수 없었는데 이 곳 쓰시마는 둘쨋날 上對馬町을 여행하면서
그 비탈진 곳에 고구마가 심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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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8월의 하늘이지만
숲에 들어가서 시라다케산 정상에 올라갈 때까지 햇빛을 한두어번 받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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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獄神社-1 |
▲ 시라다케에 自生하는 植物을 소개한 案內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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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다케신사(白獄神社)에서부터 정상
시라다케 정상까지는 정말 가파르고 오르기 힘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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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다케 정상에서 바라본 대마도---여기서 한국의 휴대폰이 잘 들려서
일본에서 막았단다..아쉽게도...그저 말 안하고 가만 있었으면 지금도
여전히 휴대폰이 잘 터졌을텐데 돌아다니면서 잘 터진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니 일본에서 막아 버렸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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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獄山 頂上 |
아오시오노 사또 |
에보시타케에서 바라 본 아소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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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獄神社의 갈림길에서 기다리다기에 먼저와서
앉아있는데 숲이 우거진 위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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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 內海를 여행하고 싶어하는나로서, 오면서 가이드 정은주씨에게
들은 이야기로 福剛(후쿠오카)에서 대마도對馬島까지 하루 4차례씩
배가 있고 배삯이 3만円이며 큐유슈우九州에도 여러차례 운항한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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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獄시다라케 上見坂카미자카 이정표 |
白獄山 頂上 바위 아래에서 저 멀리 上對馬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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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은 과거 일본대마도 경비대였고 지금
이즈하라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우측으로 하면서 일본 국도38호선을 따라
이즈하라로 돌아와 万松閣(반쇼우각꾸 嚴原町田劑808☎52-0021)에서
밥 작은 한공기, 우동, 노란무우 아주 찌그마한 것 몇조각과 새우튀김
2개, 사시미 4조각 양배추 무침으로 저녁을 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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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택시의 모양도 네모형이 참 많았고 식당앞의
개천은 맑다 못해 너무 맑아서 거짓말 조금 보내서 마셔도 될 정도로 깨끗하였고 쓰레기
봉지하나 구경하나 할 수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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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눈이라도
잠시
붙일까 싶어 버스에 갔더니 황당하게도 모든회원들이 목욕을 마치고 버스에서 나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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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이즈하라 市의 602~3번지
무로마찌氣樂な宿 요시히고 諸松 義比古씨 집에서 민박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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万松閣(반쇼우각꾸 嚴原町田劑 |
♣ 幻想의 섬 對馬島 |
| ↓ 아래 신문은 서울신문 1989년 겨울호로, 신문 전체를 다 싣지 못했다. 대마도에 대한 자료로 읽어 주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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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참조......대마도는 조선땅 - 출처 : 한배달 1989년 겨울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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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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